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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까, 말까
경향신문은 대판(375x595mm)이다. 중앙일보는 베를리너판(315x470mm)이고, 교차로는 타블로이드판(254x374mm)이다. 신문을 떠올렸을 때 가장 익숙한 형태는 대판이다. 그래서 중앙일보가 판형을 줄였을 때 익숙지 않음이 파격으로 다가왔더랬다. 대판의 크기가 광야같을 때가 있다. 레이아웃이 잘 안 그려질 때다. 공간은 드넓은데 채울 건 마땅찮고... 이럴 때 찾게되는 게 '여백의 미'다. 하지만 철저히 계산되지 않으면 지면 낭비가 될 수 있는, 여백은 양날의 검과 같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채우지 않기로 작정한 레이아웃이다. 아래 지면처럼. 8년 전 책 프론트면이다. 이미지를 버리고 텍스트로만 그것도 하나의 기사로만 지면을 꾸렸다. 이미지야 책 속에도 있을 것이고 관련 사진을 찾거나 일러스..
2020.10.19 -
슬기로운 병실 생활 (2) - 1704호 사람들
아부지는 병실서 하루 주무시더니 당장 1인실로 옮기자고 성화셨다. 밤새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코고는 소리, 옆자리서 수시로 켜는 불 때문에 힘드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단호했다. "뭐하러 돈을 써, 난 여기가 좋아" #간을 내어주마 비어있던 앞 침대에 환자가 들어왔다.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간담췌 병동이라 대략 그쪽이 아픈가보다 했는데 환자치고는 너무 아픈 기색이 없었다. 보호자도 엄마가 가끔 오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정신과 의사 000입니다" 웬 정신과? 귀가 절로 쫑긋했다. (커텐은 그저 시야를 가릴 뿐 5인실이라는 곳은 숨소리마저 공유가 되는 곳이었다) "수술 앞두고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그런 게 있으신가요?" 뭐 저리 뻔한 질문을 하지? 당연히 무섭겠지. "아니요, 괜찮..
2020.10.05 -
슬기로운 병실 생활 (1) - 난 '보호자'다
소녀 하니는 엄마가 보고프면 달리고 또 달렸다. 청개구리 왕눈이는 비오는 날 모친의 유언대로 개울에 엄마를 묻었다. 둘리도 엄마와 생이별을 했고, '엄마 없는 하늘 아래'와 '엄마 찾아 삼만리'는 또 어떤가. 왜 그 시절엔 하나같이 눈물 쏙 빼는 이야기들로 엄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 했을까. 왕눈이가 엄마를 묻는 그 심정은 어른이 된 내가 상상해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말이다. 말을 잘 안 들은 대가치곤 너무나 큰 형벌이 아닌가.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건 어른이 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이래저래 안 아프고 사신 건 아니지만 엄마는 입원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괜찮겠지. 소화가 안 된다는 말을 흘려들었는데 결국 십이지장이 막혔단다. "암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암이 아..
2020.09.20 -
떠났던 기억은 떠날 것을 기약하게 한다
사람 맘이 뭔가를 못하게 되면 더 하고 싶어진다. 여행이 그렇다.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고, 돈이 있을 땐 시간이 없다. 지금은, 둘 다 있다한들 코로나로 해외여행은 그저 꿈이다. 해외여행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던 시절, "기내식 먹고 싶다"는 선배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맛있길래' 정도로 해석했던 거 같다. 훗날 눈앞에 기내식이 펼쳐졌을 때 난 실망을 금치 못했다. 구름 위에서 여행의 설렘을 맛보고 싶다는 이야기였음을 그렇게 깨쳤다. 혼자서 열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 본 건 뉴욕행이 처음이었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내가 그곳을 택한 건 그저 '오기'였을까. (이년 뒤 역시 '영알못'인 채로 런던행에 몸을 실었으니 오기가 맞지 싶다.) 입국 심사가 입사 면접보다 떨릴 줄이야. 뭐하러..
2020.07.27 -
'그 후'
어릴 적 우리 집엔 항상 신문이 있었다. 집집마다 신문을 많이 보던 시대이기도 했고, 아버지 친구분이 신문 지국 일을 하셔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연이 있기도 했다. 그분이 다루는 신문이 바뀔 때마다 집에 배달되는 신문의 제호도 바뀌었다. 경향신문이 오래 배달되다가 한국일보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동아일보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를 보던 때도 있었던 듯 싶다. (고시원을 하셨던 원주 할머니집에 가면 서울신문이 있었다. 각종 시험 공고문은 고이 찢겨 벽에 붙어있고.) 아니라 하시지만 당시 엄마 아버지는 신문의 색깔에 따라 당신들의 정치색을 바꾸셨던 것 같다. 평범한 필부필부인 두 분은 언론이 하는 말을 그만큼 신뢰하셨던 것일 테고. 지금은 색이 너무 뚜렷하셔서 뜻에 반하는 말을 했다간..
2020.07.12 -
반전의 연속 '가족의 세계'
#1 조카 1호와 2호는 이란성 쌍둥이다. 올해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다. 코로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입학선물로 국어사전을 샀다. 책 보는 걸 좋아하고 글도 제법 쓸 줄 아니 그리 이른 선물은 아닌 듯 싶었다. 받아쓰기 하면서 놀았던 것처럼 뜻 찾기도 같이 하면 놀이가 되겠지. '예쁜 말 바른 글을 쓰는 어린이가 되길, 이모가' 야심차게 사전 앞장에 친필 '생색'도 새겨넣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카들은 이 문구를 보지 못했다. 사전은 받자마자 내팽개쳐졌으므로. '아...내 7만원...' #2 쌍둥이들은 어떤 놀이를 하든 꼭 승부욕으로 끝장을 본다. 누구 하나가 삐지거나 울어야 끝이 난다. 페어 플레이를 하는 듯 싶다가도 막무가내로 우기기 일쑤다. 함께 놀다 보면 뒷목 잡는 일은 기본이요, 쓰디쓴 ..
202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