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병실 생활 (2) - 1704호 사람들

2020. 10. 5. 11:07카테고리 없음

아부지는 병실서 하루 주무시더니 당장 1인실로 옮기자고 성화셨다. 밤새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코고는 소리, 옆자리서 수시로 켜는 불 때문에 힘드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단호했다. "뭐하러 돈을 써, 난 여기가 좋아"

 

의사 파업이 남긴 것. 새 환자를 받지 않아 마지막 며칠은 5인실을 독차지하며 지냈다. 조용했지만 적막하기도 했다. 

 

#간을 내어주마

 

비어있던 앞 침대에 환자가 들어왔다.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간담췌 병동이라 대략 그쪽이 아픈가보다 했는데 환자치고는 너무 아픈 기색이 없었다. 보호자도 엄마가 가끔 오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정신과 의사 000입니다"

웬 정신과? 귀가 절로 쫑긋했다. (커텐은 그저 시야를 가릴 뿐 5인실이라는 곳은 숨소리마저 공유가 되는 곳이었다)

"수술 앞두고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그런 게 있으신가요?"

뭐 저리 뻔한 질문을 하지? 당연히 무섭겠지.

"아니요, 괜찮아요. 하하"

그 와중에도 참 밝은 사람이다. 

 

알고보니 그녀는 간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 것도 동생에게. 그래서 엄마가 두 병실을 왔다갔다 하느라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거였다. 

내게 그런 상황이 닥치면 선뜻 내어줄 수 있을까.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떨까. 그녀가 엄청 대단해 보였다. 

 

간 이식은 간담췌 외과 수술 중에 가장 난도가 높은 수술이라고 한다. 수술 날, 그녀의 부모님은 두평 남짓한 그 공간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커텐이 확 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보호자 두 분 계시면 안 돼요"

코로나 때문이긴한데 좀 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원칙은 원칙이니까. 실은 우리도 수술 끝나고 병실로 돌아온 엄마를 다 같이 보려고 샛길을 뚫긴 했었다 (먼저 입원해 있던 옆 환자 보호자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 간호사한테 살짝 혼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날 밤, 엄마가 그랬듯 그녀 역시 15분마다 진통제를 맞고도 많이 아파했다. 밤 11시쯤 됐을까. 병실은 10시부터 취침모드라 고요한 가운데 그녀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엄마가 곤히 잠든 모양이었다. 것도 그럴 것이 자식을 둘이나 수술실에 들여보냈으니 하루가 얼마나 길고 힘들었을까.  

그녀가 또 한 번 엄마를 불렀다.

"... ..."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커텐을 살짝 열었다.

"제가 깨워 드릴까요?"

"네^^"

미소짓는 모습에 안심이 되긴 했다. 눈을 돌리니 보조침대에 이불도 없이 쪼그려 잠든 엄마가 보였다. 

"어머니~"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금방 깰 줄 알았는데 미동도 없었다.

"어머니~~~" 그렇게 두 세번을 흔들었는데 깨자마자 저승사자라도 본 듯 손을 훠이훠이 내 저었다. 솔직히 그 반응에 나도 놀라긴 했다. 

"따님이 불러서요~" 그제서야 엄마는 정신을 차린 듯 했다. 꿈 속에서도 많이 고되셨나보다. 

참 자식이 뭔지, 부모가 뭔지. 

 

그녀는 빛의 속도로 회복을 하고 "아줌마 저 퇴원해요~"라며 엄마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고 떠났다. 

 

 

#괜찮아, 사랑이야

 

(이건 내가 출근하고 없을 때 벌어진 일이라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환자한테 갑질하는 거예요?"

문간 환자 남편이 간호사에게 버럭 화를 냈다. 수술한 지 얼마 안 돼 못 걷는데 왜 소변줄을 뺐냐는 거였다. 근데 엄마를 보니 그리 큰 수술을 하고도 이틀 만에 걸어지더라는. 우리는 의사나 간호사가 시키는대로 "네네" 하는 스타일이라 그게 왜 화를 낼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엄청 격앙돼 있었다. 

 

마침 연차가 좀 있는 간호사였다. 

"환자분 화장실 가셔야 하는데 보고만 있을 거예요? 얼른 이쪽 잡으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환자의 다른쪽을 부축하고 본인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도맡아 처리했다.

보통의 경우 해야할 일도 기분이 상하면 제대로 못하거나 안 하기 마련인데 싸움은 뒤로하고 일단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나서 야무지게 설명을 하고 버럭에 대한 사과를 받은 후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 카리스마에 엄만 그 간호사의 팬이 됐다)

그 아저씨는 병실의 다른 환자들에게도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엄마의 해석에 따르면 아픈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잠시 이성을 잃은 거 같다고. 참 사랑꾼이라고. 

 

50대 중반인 아주머니는 엄마와 하루 차이로 같은 수술을 했다. 췌장암인데 항암치료를 미리 받고 수술을 한 터라 엄마보다 회복이 더뎠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병실 사람들은 금세 말을 트고 마음을 나눴다. 그 집도 딸이 둘이었다. 수술 후 그래도 맘을 놓은 나와는 달리 저 딸들은 얼마나 맘을 졸일까 안쓰러웠다. 

하루는 고열에 시달려서 보니 복수가 2리터나 찬 상황이 오기도 했다. 그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다보니 남 일같지 않았다. 의사 파업으로 입원 환자가 줄면서 다른 병실 창가 자리로 옮겼는데 내과 병동으로 또 옮겨갔다는 소식만 들었다.

그 가족들도 웃으며 퇴원했길. 

 

 

#귀여운 할머니 모녀 

 

"엄마, 병원에선 핸드폰 소리 작게 해야 돼"

"야! 니 목소리가 더 시끄러워!"

눈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안과병동에 자리가 없어서 우리 옆 자리로 오셨다. 보호자는 할머니의 딸이었는데 그녀 역시 일흔 정도 돼 보였다. 

툭 툭 주고 받는 말이 어찌나 재밌는지. 우리는 덕분에 여러 번 음소거로 배꼽을 잡았다. 

 

할머니는 안대로 가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딸이 화장실을 가도 그걸 모르니 계속 뭔가를 말씀하셨는데 그 모습을 본 딸은 또 "뭘 혼자 떠들고 있어"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안 보여도 잘 먹네~"

"잠이 안 와~"  

모녀라기보다는 오래된 친구같은 케미를 자랑한 할머니 커플은 며칠 뒤 안과병동으로 떠나셨다. 

투닥거려도 오래오래 엄마로 딸로 행복하게 사셨음 좋겠다. 

 

각자의 아픔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곳. 5인실이 좋았던 건 그래서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