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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인생'을 모르겠다
넉달이 다 돼 간다. 해피앤딩인 줄 알았던 엄마의 암은 1년이 못돼 재발했다. 늦봄에 알았으니 한 계절이 뭉텅 잘려나간 느낌이다. 엄마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은 작년의 것에 비해 강도가 셌다. 처음 한달은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던 거 같다. 엄만 항암을 시작했고, 힘들어하셨다. 두 달째쯤 되니 엄마도 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부작용에 대처하는 방법도 하나 둘 알게되고. 아는 게 힘이라고, 이제 좀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이 서는데 CT를 찍어보니 약이 안 듣는단다. 다시 새로운 약으로 항암을 시작했다. 더 독한 놈이란다. 다행히도 엄만 더 독한 놈과 더 잘 싸우고 있다. 부작용도 덜해서 잘 먹고 잘 싼다. 엄마와 함께 잠드는 날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엄마의 잠꼬대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뒤척이는 ..
2021.09.18 -
신문을 펼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누가 신문을 보냐"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독자 수 1등을 자랑하는 일간지가 부수 조작을 해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틀린 말도 아니긴하다. 그럼에도 지면 편집을 왜 하냐면, 뉴스를 둘러싼 '의미'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은 왜 꼭 온라인어야 할까. 신문은 안 되나. 뉴스를 관통한 레이아웃이, 뉴스를 씹어먹은 제목이 주는 감흥은 '새롭다'보다 백배의 효용가치가 있는데 말이다. 아래는 편집기자협회 '편집상' 창고에서 건진 '신문의 존재 이유들'이다. # 나는 배드민턴 선수입니다. 다른 건 휠체어뿐입니다 온라인에 이 기사가 떴다면 난 클릭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제목이지만 뻔한 얘기다. 지면으로 옮겨 담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 장의 사진을 둘로 나눴다. 장애를 알 수 없는 상반신 사진..
2021.04.12 -
어쩌다 '주린이'
내 휴대폰은 소니 엑스페리아다. 사람들 대부분이 갤럭시 아니면 아이폰을 쓰니까, 남들 다 사는 건 안 사고 싶어서. (그래서 남들 다 하는 결혼을 안(?)하는 건가...-.-) 주식도 마찬가지였다. 너도나도 한다니까 별로 당기지 않았다. 벌었다는 사람만 있고 잃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주식에 빠진 청년들 이야기를 다룬 '2030 자낳세 보고서' 기획 편집을 하면서도 '해볼까'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 역시 2030 범주만 벗어났지 자산 상황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혹할 법도 했지만 의심이 더 컸다. 돈이 그렇게 쉽게 벌리겠어. 작년 12월 초. 코스피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고 주식에 관한 솔깃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월급 외 다른 돈벌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이 살았다. 월급이..
2021.01.25 -
'매일한국', 이 제목이 최선입니까
선후배와 점심을 먹고 테이크 아웃 커피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허쉬, 재밌을 거 같지 않냐?" "그게 뭔데요?" "신문사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황정민이랑 윤아 나오고" 그렇게 JTBC '허쉬'를 보게 됐다. '매일한국'은 전통있는 종합일간지다. 그곳에 여주(윤아) 포함 인턴 4명이 입사한다. 사회부 등 각 부의 교육을 마쳤고 마지막은 남주(황정민)가 있는 디지털뉴스부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하는데, 자꾸 눈에 밟히는 장면들이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온오프 기사는 사건의 매개가 되는 중요한 소품이다. 독자는 기사를 읽기 전에 제목을 본다. 시청자에겐 더더욱 기사를 읽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 'NO Gain, No Pain' 인턴 마지막 날. 수연은 디지털뉴스부 모 선배에게 급한 일이 생겨 그의 ..
2020.12.22 -
내 맘대로 '포토 다큐' 어워드 (2010~2020)
사진부와 일을 하는 건 즐겁다. 좋은 사진은 좋은 재료일 뿐 아니라 좋은 편집의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 하나만 잘 써도 그 지면은 기본은 한다. 그래서 '포토 다큐'는 편집자가 욕심내는 지면 중 하나다. 지금부터 거꾸로 딱 10년. 지난 '포토 다큐'들 중에 (그 전의 훌륭한 작품들은 다음 기회에) 내 마음을 동요시킨 작품을 골라봤다. 감히 사진을 평가한 건 아니고, 사진을 돋보이게 만든 편집에 기준을 뒀다. # 2010.08 '누가 내 손을 잡아줄까' 개인적으로 사진과 사진설명을 떨어뜨려 놓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독자들은 번호를 찾아 맞춰봐야 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디자인적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우선순위를 어디 두냐에 따라 편집자의 선택이 갈린다. 이 지면이 그래도 좋았던 건..
2020.11.16 -
'화무반나절청'이 남긴 것
가끔 꽃을 산다. 5천원에서 만원 정도면 한 다발을 살 수 있는 소박한 꽃집을 알게 된 후부터다. 연대 앞 정류장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꽃집인데 주인 할머니 인심이 후하다. 집에 꽂아둘 거니 그냥 들고가겠다고 해도, 투명 비닐이라도 예쁘게 둘러 꼭 포장해 주신다. 수십년 함께한 꽃에 대한 할머니 나름의 예가 아닐까 싶다. 노란 프리지어를 샀더니 안개꽃이 덤으로 따라왔고, 꽃이 좀 시들었다 싶으면 몇 송이를 더 주신다. 대학 근처다보니 학생 손님이 많다. 주머니는 얇은데 선물은 하고 싶고. 그런 청춘의 마음을 헤아린 걸까. 한 송이를 사도 초라하지 않게 할머니는 요술을 부렸다. 싱싱한 생화보다 시들고 마른 꽃이 더 많은 날도 더러 있는데 그 놈의 코로나가 원흉이다. 근처를 지나다 언뜻 보니 파란 ..
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