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까, 말까

2020. 10. 19. 00:12카테고리 없음

경향신문은 대판(375x595mm)이다. 중앙일보는 베를리너판(315x470mm)이고, 교차로는 타블로이드판(254x374mm)이다. 신문을 떠올렸을 때 가장 익숙한 형태는 대판이다. 그래서 중앙일보가 판형을 줄였을 때 익숙지 않음이 파격으로 다가왔더랬다. 

 

대판의 크기가 광야같을 때가 있다. 레이아웃이 잘 안 그려질 때다. 공간은 드넓은데 채울 건 마땅찮고... 이럴 때 찾게되는 게 '여백의 미'다. 하지만 철저히 계산되지 않으면 지면 낭비가 될 수 있는, 여백은 양날의 검과 같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채우지 않기로 작정한 레이아웃이다. 아래 지면처럼.

 

8년 전 책 프론트면이다. 이미지를 버리고 텍스트로만 그것도 하나의 기사로만 지면을 꾸렸다. 이미지야 책 속에도 있을 것이고 관련 사진을 찾거나 일러스트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쓰지 않았다는 건 여백의 힘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든 신문이든 글과 사진이 같이 있다면 사진에 먼저 눈이 가기 마련이다. 지면을 구성할 때 이미지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시선을 붙들어야 글도 읽히기 때문이다. 

보통 광고 없는 한 면엔 이미지 공간을 남겨놓고 원고지 28매 안팎의 기사를 넣는다. 그런데 이미지 없이 20매의 기사 하나만 싣는 건 여러모로 실험이었다.

네모 박스 선이 기사를 꽉 잡아주고, 사방의 여백이 '이래도 안 읽으래'라고 압박을 하는. 기사 입장에선 참 고마운 레이아웃이었을 것이다. 우주의 기운을 몰아주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네 번의 주말이 지나고 한 달 뒤. 박스 선이 사라졌다. 파격과 신선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인간은 쉽게 지루해 하는 존재니까. 그래서 등장한 게 대왕 따옴표다. 아무래도 이미지 역할을 담당할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파격의 큰 틀은 유지하되 신선도를 재고할 방안으로 글틀에도 변주를 주기 시작했다. 

 

다시 두달 뒤, 집 나간 이미지가 돌아왔다. 크기는 2단에 불과했으나 안 쓰겠다는 원칙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날이지 않았을까. 

 

반년 뒤, 이미지는 다시 집을 나갔고 따옴표가 성형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또 두달 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처음의 파격이 제일 나았던 걸까. 지면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 후 1년여가 흘렀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여백은 살아남았지만 비중이 줄었고 기사가 2 꼭지로 늘었다. 이미지도 다시 돌아왔다. 제일 큰 변화는 책과 삶 머리다. 시류에 따라 담백한 고딕이나 명조가 선호되기도 하지만 서체에 큰 변화를 줌으로써 리뉴얼의 느낌을 살렸다. 

 

그렇게 또 3년이 흘렀다. 존재감 뿜뿜이던 여백은 그 자리를 이미지에 내주었다.

 

어떤 면이 가장 좋은 지면이었을까. 역시 정답은 없다.

실험은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남이 하지 않은 '처음'에 방점이 있으며, 무엇보다 누군가가 기억한다면 그걸로 충분히 좋은 지면이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