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0. 22:22ㆍ카테고리 없음
#1
조카 1호와 2호는 이란성 쌍둥이다. 올해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다.
코로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입학선물로 국어사전을 샀다. 책 보는 걸 좋아하고 글도 제법 쓸 줄 아니 그리 이른 선물은 아닌 듯 싶었다. 받아쓰기 하면서 놀았던 것처럼 뜻 찾기도 같이 하면 놀이가 되겠지.
'예쁜 말 바른 글을 쓰는 어린이가 되길, 이모가'
야심차게 사전 앞장에 친필 '생색'도 새겨넣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카들은 이 문구를 보지 못했다. 사전은 받자마자 내팽개쳐졌으므로.
'아...내 7만원...'
#2
쌍둥이들은 어떤 놀이를 하든 꼭 승부욕으로 끝장을 본다. 누구 하나가 삐지거나 울어야 끝이 난다. 페어 플레이를 하는 듯 싶다가도 막무가내로 우기기 일쑤다. 함께 놀다 보면 뒷목 잡는 일은 기본이요, 쓰디쓴 패배는 늘 이모의 몫이다.
한번은 외할머니가 화투 그림 맞추는 것과 점수 계산법을 알려줬는데 제법 잘 따라 했다. 문제는 무한반복 한다는 거. 조카들은 종일 "하투해~하투" 돌림노래를 불렀다.
"자꾸 그러면 이모 화낼 거야!"
"응, 화내봐~"
나는 허리가 빠지도록 벌을 서야 했다.
#3
조카 3호는 다섯살 남자 아이다. 형아가 롤 모델이고 누나는 천적이다. 제일 무서워 하는 말은 "너랑 안 놀아"다. 나 같으면 치사해서 "나도 안 놀아" 할 텐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놀아줘" 하고 서럽게 운다.
셋 중에 이모한테 제일 관심이 없다. 형아가 좋아하니 그냥 따라하는 정도의 애정을 베푼다. 그래도 막내라 제일 귀엽다.
"오늘은 이모랑 같이 잘 거지?"
"응~근데 엄마랑"
#4
선배가 물었다. 아버지가 전화 자주 하시냐고. "1년에 한 번 정도요" "그럼 너는?" "저도 엄마가 집 비우면 밥 잘 드시냐고..." (그게 1년에 한두 번이다)
그런 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전화를 하신단다. (초1도 폰 번호가 있는 세상이라니.) 엄마 말에 의하면 조카들이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급식 반찬은 뭐였는지 미주알 고주알 잘 얘기한다고. 그맛에 전화를 하신다고.
난 아직도 아버지에겐 미주알 고주알이 안 된다. 이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듯 싶다.
그러면서 조카들에겐 수십번도 더하는 말.
"오늘 뭐했어? 보고싶다, 이모가 사랑해~"
#4-1
"엄마 죽고나면 전화하지 왜"
못해도 1주일에 한 번은 엄마랑 통화를 한다. 카톡도 하고 이래저래 자주 연락을 하는데 며칠을 앓으시더니 "괜찮냐"는 내 말에 이리 장난을 치신다. 평상시엔 "엄마 뭐해~" 살갑게 물어도 "왜" 하며 귀찮게 받는 일이 허다하신 분이 참.
가족이지만 같이 살지 않는다는 건, 애틋함이 배가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끝내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근데 참 희한하다.
그렇게 예쁘고 보고싶은 조카들인데, 같이 있으면 왜 집에 오고 싶어지는지.
그토록 그리운 고향집인데, 막상 가면 왜 혼자 있고 싶어지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