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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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반나절청'이 남긴 것
가끔 꽃을 산다. 5천원에서 만원 정도면 한 다발을 살 수 있는 소박한 꽃집을 알게 된 후부터다. 연대 앞 정류장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꽃집인데 주인 할머니 인심이 후하다. 집에 꽂아둘 거니 그냥 들고가겠다고 해도, 투명 비닐이라도 예쁘게 둘러 꼭 포장해 주신다. 수십년 함께한 꽃에 대한 할머니 나름의 예가 아닐까 싶다. 노란 프리지어를 샀더니 안개꽃이 덤으로 따라왔고, 꽃이 좀 시들었다 싶으면 몇 송이를 더 주신다. 대학 근처다보니 학생 손님이 많다. 주머니는 얇은데 선물은 하고 싶고. 그런 청춘의 마음을 헤아린 걸까. 한 송이를 사도 초라하지 않게 할머니는 요술을 부렸다. 싱싱한 생화보다 시들고 마른 꽃이 더 많은 날도 더러 있는데 그 놈의 코로나가 원흉이다. 근처를 지나다 언뜻 보니 파란 ..
2020.10.26 -
비울까, 말까
경향신문은 대판(375x595mm)이다. 중앙일보는 베를리너판(315x470mm)이고, 교차로는 타블로이드판(254x374mm)이다. 신문을 떠올렸을 때 가장 익숙한 형태는 대판이다. 그래서 중앙일보가 판형을 줄였을 때 익숙지 않음이 파격으로 다가왔더랬다. 대판의 크기가 광야같을 때가 있다. 레이아웃이 잘 안 그려질 때다. 공간은 드넓은데 채울 건 마땅찮고... 이럴 때 찾게되는 게 '여백의 미'다. 하지만 철저히 계산되지 않으면 지면 낭비가 될 수 있는, 여백은 양날의 검과 같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채우지 않기로 작정한 레이아웃이다. 아래 지면처럼. 8년 전 책 프론트면이다. 이미지를 버리고 텍스트로만 그것도 하나의 기사로만 지면을 꾸렸다. 이미지야 책 속에도 있을 것이고 관련 사진을 찾거나 일러스..
2020.10.19 -
슬기로운 병실 생활 (2) - 1704호 사람들
아부지는 병실서 하루 주무시더니 당장 1인실로 옮기자고 성화셨다. 밤새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코고는 소리, 옆자리서 수시로 켜는 불 때문에 힘드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단호했다. "뭐하러 돈을 써, 난 여기가 좋아" #간을 내어주마 비어있던 앞 침대에 환자가 들어왔다.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간담췌 병동이라 대략 그쪽이 아픈가보다 했는데 환자치고는 너무 아픈 기색이 없었다. 보호자도 엄마가 가끔 오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정신과 의사 000입니다" 웬 정신과? 귀가 절로 쫑긋했다. (커텐은 그저 시야를 가릴 뿐 5인실이라는 곳은 숨소리마저 공유가 되는 곳이었다) "수술 앞두고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그런 게 있으신가요?" 뭐 저리 뻔한 질문을 하지? 당연히 무섭겠지. "아니요, 괜찮..
202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