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반나절청'이 남긴 것

2020. 10. 26. 00:24카테고리 없음

 

 

가끔 꽃을 산다. 5천원에서 만원 정도면 한 다발을 살 수 있는 소박한 꽃집을 알게 된 후부터다. 

연대 앞 정류장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꽃집인데 주인 할머니 인심이 후하다. 

집에 꽂아둘 거니 그냥 들고가겠다고 해도, 투명 비닐이라도 예쁘게 둘러 꼭 포장해 주신다. 수십년 함께한 꽃에 대한 할머니 나름의 예가 아닐까 싶다.  

 

노란 프리지어를 샀더니 안개꽃이 덤으로 따라왔고, 꽃이 좀 시들었다 싶으면 몇 송이를 더 주신다. 

대학 근처다보니 학생 손님이 많다. 주머니는 얇은데 선물은 하고 싶고. 그런 청춘의 마음을 헤아린 걸까. 한 송이를 사도 초라하지 않게 할머니는 요술을 부렸다. 

싱싱한 생화보다 시들고 마른 꽃이 더 많은 날도 더러 있는데 그 놈의 코로나가 원흉이다. 

 

근처를 지나다 언뜻 보니 파란 수국이 있었다. 다른 곳에선 한 송이에 2만원도 훌쩍 넘는 녀석이다. 

"얼마에요?"

"9천원~"

역시다. 오묘한 푸른빛이 도는 탐스러운 녀석으로 골랐다. 꽃잎 끝에 맺힌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거 같은. 

 

집에 와서 꽃병을 찾으니 수국에 마땅한 게 없다. 서랍을 뒤져 찾긴 찾았는데 장미꽃 한 송이 꽃으면 딱 적당할 크기다. 다른 건 입구가 너무 넓고. 물을 채우고 꽂아봤다. 호리병 모양의 잘록한 부분이 꽉 꼈다. 이 정도만 물에 담겨도 되겠지. 꽃대의 절반을 잘라냈다. 예쁘게 꽂아 책상에 올려놓으니 마음이 예뻐지는 느낌이다. 

'이 맛에 꽃을 사는 거지'

 

다음 날. 햇살을 머금은 수국은 얼마나 더 예쁠까. 부스스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갔다.

오 마이 갓. 

어쩜 이렇게 빨리 시들 수가. 그것도 폭삭. 

꽃병에서 빼 보니 녀석의 사인은 탈수였다. 짧아진 발이 물에 닿지 않았던 것이다. 몇 센티만 잠겨도 하루는 버틸 줄 알았는데 이름처럼 물을 많이 먹는 꽃이었던 거니. 

꽃이란 게 어차피 화무십일홍이지만, 수국은 '화무반나절청'으로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병실 옆자리 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더랬다. 

"내가 저렇게 팔팔했던 때가 있었나 싶어"

나도 지나는 대학생들을 보면 내가 언제 저렇게 파릇했나 싶은데. 

 

시든다는 건, 꽃이든 사람이든 피할 수 없는 일인데 그럼에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주름진 엄마의 얼굴이 할머니와 닮아가는 게 싫은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시들고 있는 중일지라도, 빛은 좀 바랠지라도 슬퍼하지 말기.

덜 시들고, 덜 바랜 날이 오늘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