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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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에게
'엄마는 엄마 없는 엄마가 됐다.' 김금희 산문집 을 읽다가 이 한 문장에 왈칵 했다. 가끔 생각과 느낌은 가득한데 이걸 어찌 표현해야 할지 아득할 때가 있다. 표현할 필요가 없을 때는 더더욱 형용되지 않은 상태로 그 감정들은 휘발되고 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하고 넉달이 지났다. 같이 살지 않아서였을까. 내 눈물은 금방 말랐고, 할머니를 잃은 것보다 엄마의 상실감이 내내 걱정이 됐다. 엄마 없는 엄마, 그랬다. 엄마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내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의 딸.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이 한 줄에 다시 가슴이 얼얼했다. 친가쪽 조부모가 안 계셔서 내게는 유일한 할머니셨다. 엄마를 시집 보내고 시골에서 고시원을 하셨는데 방학 때 놀러가면 학생 아저씨들이 (그들은 다 판검사가 됐을까) 반갑..
2020.05.03 -
불혹한 마흔, 비혼에 혹하다
십대엔 초등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이었다. 이십대엔 대학생이었고, 백수였고, 직장인이었다. 삼십대엔 직장인이었고, 직장인이었으며, 직장인이었다. 사십대가 됐다. 포털 사이트 연령별 많이 본 뉴스 설정이 하루 아침에 30에서 40으로 바뀐 걸 보고 실감했다. 아, 나 마흔이구나. 사월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많이 받아들였다. 나이먹음을 무슨 재주로 거부하겠는가. 삼십대엔 아내와 엄마란 직함을 얻을 줄 알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리 사니까. 그게 보통의 삶, 평범한 삶이라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젤 어려운 거였다. 보통, 평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신다. 그 말이 맞는 듯도 싶다. 여전히 난 소소한 것에 괴롭고, 불안하며,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그런데 말이다. 기혼자들은 모두 결..
2020.04.27 -
내 글이 안 읽힌다면 제목이 구려서다
책을 고를 때, 블로그를 볼 때, 신문을 읽을 때, 인터넷 뉴스를 볼 때 당신을 혹하게 하는 건 무엇입니까. 강렬한 사진일 수도, 세련된 디자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제목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제 제목에 낚인 것이겠지요. 어렸을 때 일기는 그야말로 숙제였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밀린 일기의 날씨는 오롯이 기억의 몫이었고 내용은 에세이라기보다는 소설에 가까웠습니다. 방학숙제용일 경우 '상'이 목적이었으니까요. 열심히, 성실히는 하기 싫은데 상은 또 받고 싶은 '욕망 어린이'였던 게지요. 그리고 매일 이야깃거리가 있을 만큼 재미난 일상이 아니기도 했고요. 그럼 그 또래 아이들의 비슷한 작문 실력 가운데서 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2020.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