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얼굴에 졌다

2020. 5. 26. 22:31어제 편집

퇴근길.

'코로나'가 일상으로 들어온 지 석달이 넘었는데도 마스크를 깜빡할 때가 있다. 길거리선 그렇다치고 버스에 오를 때 그 민망함이란. 

 

어제 코로나 관련 이슈는 크게 2가지였다. 개학을 앞두고 서울에서 유치원생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과 대중교통 이용 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한다는 것.

내가 편집할 면에는 두 번째 뉴스가 톱으로 올라왔다. 둘러치고 메쳐야 할 내용이 아니므로 제목달기 난이도로 치면 상중하 중에 '중' 정도에 속했다. 

 

1. 지하철은 이미 시행 중이니 대중교통으로 뭉뚱그리는 거보단 버스와 택시로 구체화하고

2. 당장 시행이니 오늘부터(신문 날짜 기준)라는 말이 들어가면 좋을 듯 싶고 

3. 탑승 때 마스크 안 쓰면 못 탄다는 내용을 

4. 이런 결정이 내려진 배경과 함께 

 

오늘부터라는 말을 넣으려면 글자 크기를 줄인다 해도 2~3자는 더 빼야 했다.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마스크 안 쓰면'인데 '마스크 없이'는 1자밖에 안 줄고...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대안은 안 떠오르고.

결국 난 '오늘부터'를 버렸다.  

 

집에 가는 길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휴대폰 속 뉴스1의 제목. '맨얼굴'

맨얼굴이 있었다. 내 고민의 끝은 왜 맨얼굴에 닿지 못했던가. 조사가 빠져 매끄럽지 않고 뒷부분이 사족이지만 그런 것들을 맨얼굴이 다 커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화장 안 한 얼굴'로 딴죽을 걸려면 걸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경우에는 민낯이란 단어가 더 가깝지 않은가.

'마스크 안 쓰면' 이 여섯 글자를 '맨얼굴' 세자로 표현한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검색해 보니 관련뉴스에서 이 단어를 쓴 매체는 여기가 유일했다. 

 

다음날, 다른 신문들은 이 뉴스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오늘부터'를 버린 게 못내 아쉽지만, 내일부터 잘하는 걸로.

 

 

 

***편집문법을 떠나 오늘 가장 재밌게 읽은 제목. 명쾌, 유쾌, 통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