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인생'을 모르겠다

2021. 9. 18. 17:21카테고리 없음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햇살이 춤을 춘다. 시련 속에서도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

넉달이 다 돼 간다.

해피앤딩인 줄 알았던 엄마의 암은 1년이 못돼 재발했다. 늦봄에 알았으니 한 계절이 뭉텅 잘려나간 느낌이다.

엄마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은 작년의 것에 비해 강도가 셌다.

 

처음 한달은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던 거 같다. 엄만 항암을 시작했고, 힘들어하셨다.

두 달째쯤 되니 엄마도 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부작용에 대처하는 방법도 하나 둘 알게되고.

아는 게 힘이라고, 이제 좀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이 서는데 CT를 찍어보니 약이 안 듣는단다.

다시 새로운 약으로 항암을 시작했다. 더 독한 놈이란다.

다행히도 엄만 더 독한 놈과 더 잘 싸우고 있다. 부작용도 덜해서 잘 먹고 잘 싼다.

 

엄마와 함께 잠드는 날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엄마의 잠꼬대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뒤척이는 소리에도 어디가 아픈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제일 반갑다. 엄마가 잘 자고 있다는 신호니까.

아이를 낳아보진 않았지만 엄마가 자식을 키울 때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간접 경험을 해 보고 싶진 않았는데...인생이란 참...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의 위대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 세가지 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체력은 무너진다. 체력이 무너지면 암과 싸울 힘이 없다.

일상이라는 건 어쩌면 별 게 아닌 거 같다. 배고파서 먹고, 졸려서 자고, 화장실 잘 가고.

"잘 잤어?" "아침은 잘 먹었어?" "오늘 화장실은 갔어?"

엄마와의 대화창엔 주로 저런 대화들이 오간다.

톡을 안 보거나, 보고도 답이 늦으면 불안하다. 엄마가 대답을 고민한다는 건 내가 걱정하지 않게 둘러 말하고 있다는 거니까.

 

엄마는 지금도 할머니 얘기만 하면 울먹인다. 큰 기둥이었다며. 살아계실 때는 그렇게 투닥거리더니.

내게도 엄마가 그런 존재라는 걸 엄마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엄마에게 엄마가 있었던 시간만큼, 내게도 엄마로 곁에 있어주길.

이기적인 투정이래도 좋다. 마흔이 넘었지만 난 여전히 엄마품이 필요한 딸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