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포토 다큐' 어워드 (2010~2020)

2020. 11. 16. 00:34카테고리 없음

사진부와 일을 하는 건 즐겁다. 좋은 사진은 좋은 재료일 뿐 아니라 좋은 편집의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 하나만 잘 써도 그 지면은 기본은 한다. 

그래서 '포토 다큐'는 편집자가 욕심내는 지면 중 하나다. 

 

지금부터 거꾸로 딱 10년. 지난 '포토 다큐'들 중에 (그 전의 훌륭한 작품들은 다음 기회에) 내 마음을 동요시킨 작품을 골라봤다.

감히 사진을 평가한 건 아니고, 사진을 돋보이게 만든 편집에 기준을 뒀다. 

 

 

# 2010.08 '누가 내 손을 잡아줄까'

 

 

개인적으로 사진과 사진설명을 떨어뜨려 놓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독자들은 번호를 찾아 맞춰봐야 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디자인적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우선순위를 어디 두냐에 따라 편집자의 선택이 갈린다.

이 지면이 그래도 좋았던 건 메인 제목이 사진의 200%를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힘 없이 누운 할머니가 있고, 클로즈업 된 낡은 손 아래에 아홉 글자가 있다. 

'누가 내 손을 잡아줄까'

 

사진을 설명하는 제목보다 사진이 말을 하는 듯한 제목이 더 가슴이 와 닿는다.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구구절절 읊는 제목이었다면 사진의 울림은 덜했을 것이다. 

이 때 난 4년차였는데 10년차 선배의 내공에 찔끔 눈물을 흘렸더랬다.

'난 왜 이런 제목을 못 달까'

 

 

# 2011.11 '탱크와 어머니'

그야말로 정공법이다. 사진이 99%다. 본문도 없고, 제목도 크기와 내용을 최소화 했다. 

탱크가 있고 일상을 사는 주민이 있다. 북한의 포격 도발 1년 후 연평도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일상은 계속된다' 이런 류의 제목을 달았을 법도 한데 이 면의 편집자는 사진을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신선하고, 편집을 최소화한 자신감에 점수를 주고 싶다. 

 

돌이켜보니 나는 사진에 제목을 많이 다는 편이다. 어릴 때 존경하던 데스크가 "사진 제목은 잘 단다"라고 칭찬을 해 주신 적이 있는데 '은'이 걸렸지만 뭐라도 인정받은 것 같아서 참 기뻤었다. 

보란 듯 달았는데, 이젠 보란 듯 줄여봐야겠다. '탱크와 어머니'처럼.

 

 

# 2012.01 '눈물, 한숨'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세로 사진 하나, 가로 사진 하나. 그 위에 걸쳐진 눈물과 한숨. 

좌우의 여백은 소가 흘리는 눈물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사진을 강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꽉 채우거나, 주변을 비우거나. 

이 지면은 후자를 택했다. 썰렁할 수도 있었을 이 면을 세련되게 만든 건 사진을 침범한 제목의 위치다.  

이래서 편집은 한끗 차이다. 

 

 

# 2012.04 '사라지는 선, 사라질 그들'

신문을 누이는 편집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이 지면을 꼽은 건 제목과 사진들의 조합 때문이다. 

한강 하구 습지를 담은 큰 사진 속으로 들어가 보면 '선'도 있고 '그들'도 있을 것이다. 

포토 '다큐'에 방점을 둔 사진들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 한정된 지면은 늘 선택과 집중을 요한다. 

사진은 단 세장, 제목도 딱 열자다. 

그럼에도 지면은 한 편의 다큐를 품었다. 제목과 레이아웃이 시너지를 낸다는 건 바로 이런 거다. 

 

 

 

# 2013.10 '그래서 나는 또 웃습니다'

아프게 태어나 버려졌지만 방긋 웃었던 아기. 도움의 손길은 이 아기를 계속 웃게 할 수 있다는 따뜻한 이야기다. 

사진과 제목만으로 스토리를 완성했다. 감동은 그저 뒤따를 뿐.

사진도 잘 찍었고 편집도 잘 했지만, 어쩌면 아기의 미소가 다한. 

소재, 즉 내용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 지면이다.  

 

 

# 2015.05 '떨림, 흔들림, 울림'

사진설명이 포인트다. 사진설명이 없다. 그게 이 면이 색다른 이유다. 내래이션 같은 소제목이 있을 뿐이다. 

기사 처리 역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메인 제목을 소분해 막으로 나눴다. 

두둥... 그렇게 독자는 멈춰진 지면에서 한 편의 공연을 보고, 떨림을 느낀다. 

 

 

 

# 2015.08 '제주 보헤미안'

신문이 꼭 무게를 잡을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종합지가 아니던가. 

이 지면은 예쁘다. 그래서 좋다.

우선 사진들의 색감을 통일한 사진기자의 큰 그림이 있었을 거고, 그 의도를 편집이 잘 살렸다. 

다소 많은 아홉장의 사진을 나열했다. 자칫하면 그 어느 사진에도 눈길이 가지 않는 악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보이는 것과 같이 모든 사진이 살아있다. 

그리드를 충실히 지켰기 때문이다. 가로 세로 격자 선을 그어보면 본문을 포함해 모든 요소가 어긋남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선을 지키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하는 사람은 몰라도 보는 사람은 그걸 기똥차게 느끼기 마련이다.  

이 지면의 강약중강약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크기의 아홉장이었다면 그리드를 잘 지켰어도 그저 그런 면이었을 것이다.

 

 

 

# 2020.09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가을 빛이 느껴진 거야'

 

왼쪽 상단에 일렬로 줄 세워진 '+알파'가 제대로 간을 맞췄다.

사진은 더 없이 때깔이 좋고, 제목도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걸 보니 차용에 성공한 듯 싶고, 시를 닮은 기사도 시 느낌으로 잘 처리했다. 하지만 '+알파'가 없었다면 평범한 편집 그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의 일부를 떼 낸 작은 네모는 '가을 빛'의 맛보기로 역할하면서 전체 지면에 포인트도 됐다.  

때론 소소하고 작은 것에서 큰 걸 얻는다. 이 지면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