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주린이'

2021. 1. 25. 00:10카테고리 없음

새해가 밝았고, 시린 겨울도 7부 능선을 넘었다. 2021년 모두의 건강과 모두의 주식이 안녕하기를. 

 

내 휴대폰은 소니 엑스페리아다. 사람들 대부분이 갤럭시 아니면 아이폰을 쓰니까, 남들 다 사는 건 안 사고 싶어서. (그래서 남들 다 하는 결혼을 안(?)하는 건가...-.-)

주식도 마찬가지였다. 너도나도 한다니까 별로 당기지 않았다. 벌었다는 사람만 있고 잃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주식에 빠진 청년들 이야기를 다룬 '2030 자낳세 보고서' 기획 편집을 하면서도 '해볼까'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 역시 2030 범주만 벗어났지 자산 상황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혹할 법도 했지만 의심이 더 컸다. 돈이 그렇게 쉽게 벌리겠어. 

 

작년 12월 초. 코스피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고 주식에 관한 솔깃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월급 외 다른 돈벌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이 살았다. 월급이 풍족해서는 당연히 아니고, 그저 '안분지족'이랄까.

더 솔직해지면 월급 외에 돈을 벌 능력도 주변머리도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계좌를 개설했다. 휴대폰만 있으면 뭐든 되는 세상. 진입장벽을 가뿐히 넘고 50만원을 계좌에 넣었다. 

쇼핑 전의 설렘이 살짝 느껴졌다. 자, 이제 뭘 사볼까. 

삼*전자는 기본으로 담고, 신*제약이 핫하니 그것도 하나 담았다. 17만원이라 부담이 됐지만 껑충껑충 뛴 그래프를 보니 일확천금을 안겨다 줄 것 같았다. 카*오나 네*버 같은 건 너무 비싸니 패스. 셀*리온도 사고 싶은데 것도 비싸니 계열사인 헬스케어를 16만원에 샀다. 몇 천원짜리부터 몇 만원짜리까지 상승곡선인 것들로 몇 개 더 담으니 잔고 바닥. 

 

삼*전자는 내가 사자마자 얼굴색을 바꿨다. 파랗게 변하긴 했으나 낙폭이 몇 백원 수준이니 내가 파랗게 질릴 일은 아니었다.  

 

한달쯤 되니 조금씩 이 세계의 섭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기업이지만 당일 오르기 시작하는 걸 사서 고점일 때 파는 '단타'로 4만원을 벌었다. 짜릿했다. 

하루에 2만원씩만 벌어도 한달이면 40만원이었다. 이 맛에 주식을 하는구나.

전체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였지만 판을 키웠다. 온라인 적금에 넣으려 했던 20만원을, 30만원을, 50만원을 더 넣었다. 삼*전자도 더 사고 고향 기업인 현*차도 샀다. 

해가 바뀌고 며칠 뒤, 코스피는 3000을 넘어섰다.

 

'만회 좀 했습니까'

문득 이 제목이 떠올랐다. 2년차 때 머니면 편집을 했었는데 주가가 폭등한 날 내 데스크가 달아 준 제목이다.

십여년 만에 '찐감동'을 하게 될 줄이야.

삼*전자와 현*차가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 두 종목만으로 내 잔고는 플러스로 돌아섰고 돈이 불어나는 게 눈에 보이니 이성이 가출을 하기 시작했다. 100만원을 더 넣었다. 

아직 손에 쥐어지지도 않은 돈을 가지고 뭘 살지, 뭘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행복한 상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대로 쭉쭉 오를 것 같아서 팔지 않은 것들은 조금씩 하락했고, 본전이 되면 팔겠다 했던 마이너스 주식들은 낙폭을 시나브로 키워갔다. 

더 떨어질까 싶어 팔면 그 다음 날 올랐다. 오를까 싶어 사면 그 다음 날 떨어졌다. 

 

제일 큰 문제는 신*제약이었다. 무섭게 하락하더니 한달 반이 지난 지금 수익률이 -41%다. 아, 내 피같은 7만원.

만원짜리가 칠천원이 된 것도 수두룩하다. 허나 난 이것들이 반토막이 나도 팔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오르겠지란 희망고문은 내 이성으로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지만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 

눈에 보이는 빨간 숫자의 현란한 움직임에 매혹돼 사고 나면 꼭 후회가 남았고,

눈에 보이는 파란 숫자의 우울한 움직임에 걱정돼 팔고 나면 역시 아쉬움이 남았다.

 

'돈이 그렇게 쉽게 벌리겠어'라는 나의 질문은 그래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부디 나의 주식 도전이 홍조를 띤 채 끝이 나기를. 

파랗게 질려서 끝나는 파국은 아니기를.